내가 아닌 또 다른 나, 나 자신이지만 나와는 다른 그대에게 이 글을 씁니다. 어린 시절 문득 거울 앞에서 “얘! 너는 누구니?” 하며 웃어 보일 때 거울 속에 비친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. 그땐 눈빛만 마주쳐도 생경한 느낌이 들어 쑥스럽기도 하였지만, 이제는 당신을 포근히 감싸 안고 토닥여 주고 싶은 심정이랍니다.

 오늘은 모처럼 마음을 다잡고 당신을 내 곁에 초대하고 싶습니다. 내가 즐겨 다니는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. 처음에는 서먹하여 조심스럽다가 하늬바람 한줄기 불어오면 내가 용기를 내어 먼저 한마디 건넬게요.

 “일흔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온갖 풍파 헤쳐오느라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. 암 투병 중에도 하고 싶은 일을 다 이루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 주셨어요.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는 강한 의지력을 가졌음에도 육신의 건강을 지켜드리지 못해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.”

 그대를 생각하면 미소 짓기보다 눈물이 먼저 납니다. 살면서 기쁜 일도 제법 있었지만, 나의 아픔보다 가족이 겪는 고통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순간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. 혼자서 가슴앓이하며 생긴 마음의 상처가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것을 당신도 잘 아시지요. 먼 훗날 내가 임종을 맞는 순간 어떤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. 내게 가장 소중했던 일은 암 시술을 받고 후유증이 심해 가평의 산방에 들어가 지내면서 투병일기를 쓴 게 아닐는지요. 그 일기를 엮어 책으로 출판하니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‘의지의 한국인’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지요. 그땐 정말 내가 자랑스러웠습니다.

 나는 강연을 하거나 사람들 앞에 서면 꿈을 가지라고 역설하곤 했지요. 하지만 막상 나의 꿈은 무엇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. 괜히 꿈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 개인의 유익만을 위한 허황된 것은 아니었는지요.

 나는 공직에서 은퇴한 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글쓰기를 즐겨 하고 있지요. 고난에 감사하는 마음, 세상의 마중물 되기, 여행 온 것처럼, 삶의 목적을 갖고 물처럼 살기, 마음의 상처로 두 번째 화살 맞지 않기…. 이 모두가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입니다. 특히 황옥(黃玉)이라 불리는 토파즈(topaz)를 닮고 싶습니다. 토파즈는 낮에는 희미하게 있다가 어두운 밤이 되면 빛을 발하는데, 주위를 밝혀주면서 자신도 더없이 아름답게 빛난다고 합니다. 글을 쓰면서 이 같은 소망들을 크고 작은 조약돌에 하나씩 담아 별이 보이는 창가에 쌓아 올리곤 했지요. 하지만 글은 그렇게 쓰면서도 실제 나의 모습이나 행동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. 가면을 쓴 채 글 뒤에 숨거나 가식적인 흉내만 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울 때가 참으로 많았지요.

 ‘어떻게 살 것인가.’라는 명제를 놓고서도 그렇습니다. 나는 실존적 사회 참여와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줄곧 말해 왔는데, 과연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요.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.

 ‘我且非我 何憂子財(아차비아 하우자재)’라는 말이 있지요. ‘내가 또한 내가 아닌데, 어찌 자식과 재산을 걱정하는가.’라는 뜻입니다. 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다른 것을 걱정할 것인가,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몫이고 재산 또한 내 몫이 따로 정해진 것이니 모든 걱정 내려놓고 진실한 자아를 찾아보라고 합니다.

 지금까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지내왔습니다. 늘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. 밥 먹고 글 쓰고 산책하고 일을 하면서 나는 나를 위하는 것에 몰두하였습니다. 하지만 정작 내가 위해 온 그 ‘나 자신’의 모습이 그대가 보기에 만족스러웠는지요. 돌이켜 보면 내가 생각하고 내가 정한 기준대로 무작정 살아온 게 사실입니다.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람 있고 후회 없이 살기 위해 그대에게 물어봅니다. 어떻게 살아야 참 잘 살다 가노라며 이 세상 하직할 때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요. 그대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, 때로는 먼발치에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셨기에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니까요. 불모지에 파송된 선교사들처럼 낮은 곳을 찾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어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건 정말 나에게 벅찬 일일까요.

 이제 밤이 깊어 갑니다. 오늘은 이만 줄이고 달빛 좋은 날 그대를 다시 만나 나를 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. 늘 그랬듯이 오늘 밤도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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